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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플랫폼]리뷰/결말해석:잡탕같은 영화, 재미는 있지만 굳이 봐야하나 싶은 작품#예고편이전부

by 윤공 영화리뷰 2020. 5. 16.

<더 플랫폼> 재미는 있는데 와 닿지는 않았던 영화


 

우리는 모든 인간이 하나의 생명체로서 평등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께 묻습니다. 우리는 평등합니까?

 

 프랑스 시민혁명,미국 독립혁명 등 각종 역사적 사건으로 우리 사회에는 태생적 계급이 사라졌지만 자본의 유무를 경계로 보이지 않는 선이 존재합니다.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가 대표적인 예시죠.

 

 자유라는 이념아래 존재하는 자본주의체제가 주는 모순점이 바로 이러한 지점입니다. 계층을 없애려고 도입했던 자유가 역설적이게도 또 다른 계급사회를 낳고 있는 것이죠.

 

 

 

 

 

 

이런 흥미로운 이야기는 그간 영화의 소재로 빈번히 활용되었습니다. 대표적으로 봉준호 감독의 작품이 그러하죠. 우리 사회를 상징하는 열차라는 수평적 공간에서 꼬리칸과 1등 칸의 계층갈등을 보여준 <설국열차>

 

 

 

 

 

 

 

 

 

 

 

지하실과 지상이라는 수직적으로 대비되는 공간 안에서 기생하는 기택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맹점을 꼬집은 <기생충>까지, 빈부와 보이지 않는 계급의 문제는 우리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에 영화의 단골 소재로 활용됩니다.

 

 

 

 

 

 

 

 

 

 

 

 

 

그리고 오늘 이야기할 <더 플랫폼>도 마찬가지로 수직 감옥이라는 수직적 구조의 건축물 속에서 등장인물의 행동을 통해 현대 자본주의의 맹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작품입니다. 평소 영화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높이 평가하는 저로서는 상당히 기대할 수밖에 없었던 영화였는데요. 실제 영화를 보고나니 재미는 있었지만 기대와 달리 퍽 좋지는 않았습니다. 영화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이유를 한 마디로 정의하면 영화의 주제전달 방식이 세련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스토리를 간단하게 살펴보고 해보도록 하죠. 이 앞으로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참고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한 남자가 있습니다. 이름은 고렝이죠. 눈을 뜬 고렝은 룸메이트 트리마가시에 의해 자신의 현실을 깨닫게 됩니다. 몇 층까지 있는지 모르는 수직 감옥 속, 고렝은 현재 48층에 존재합니다. 그리고 곧이어 내려오는 자기부상 플랫폼에 의해 자기가 위치한 48층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1층부터 마지막 층까지 엄청난 양의 음식이 층별로 차례로 내려오고 각 층에는 2분이라는 제한 시간이 부여가 됩니다. 그 안에 배를 채워야하죠. 음식을 몰래 빼돌리면 패널티가 부과됩니다. 층의 온도가 타죽을 정도로 올라가거나 얼어 죽을 정도로 내려가는 것이죠. 그리고 1달이라는 기한이 지나면 랜덤으로 층이 바끼게 되는데요.

 

트리마가시 말에 의하면 족히 100층이 넘는다고 합니다. 4~50층만 가도 식량이 바닥난다고 하던데, 과연 이러한 참혹한 현실에서 고렝은 처음 감옥에 들어올 때 약속한 6개월을 버틸 수 있을까요?

 

#장점

 

우선 가볍게 보기에는 충분히 재미는 있습니다. 적나라하게 묘사한 수직감옥의 비참한 현실, 층이 바끼자 밝혀지는 트리마가시의 정체, 극의 몰입을 도와주는 배경음의 활용 등 94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 동안 충분히 집중할 수 있는 여러 요소들이 존재합니다.

 

 

 

 

 

 

 

저도 영화를 보는 동안은 꽤나 재미있게 봤어요. 그리고 고렝 역을 맡았던 이반 마사구에라는 배우의 연기를 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희망을 갖고 들어왔지만 매 달 층이 바뀌면서 수직감옥의 현실에 순응하는 그의 모습과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표정연기 등이 꽤 괜찮은 편입니다.

 

 

 

 

 

 

 

마지막으로 영화가 전달하는 주제가 쉽게 와 닿는 다는 것도 장점일 겁니다. 우리 사회를 상징하는 수직감옥, 그 속에서 층으로 대표되는 계급 사회, 다음 달이면 아래층으로 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래층 사람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사람들의 극심한 이기심. 우리 사회와 많이 닮아 있죠. 평소 디스토피아 세계관과 넷플릭스 시리즈 중 <블랙미러>와 같은 사회비판적 스토리를 좋아하신다면 충분히 재미있게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생충이 더 좋은 영화인 이유

 

지금부터는 영화의 단점에 대해 이야기 해보도록하죠.

 

바로 작년이죠. 2019, 전 세계를 흔들어놨던 한국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붕준호 감독의 <기생충>이죠. 이 영화도 마찬가지로 지하실과 지상이라는 수직 구조를 통해 현대 자본주의의 맹점에 대해 비판한 영화입니다. 미장셴, 디테일, 배우, 편집, 배경음 등 모든 것이 훌륭했지만 <기생충>이 특별한 영화로 자리할 수 있었던 데에는 주제를 전달하는 방식이 참 세련되었기 때문입니다.

기택 가족이 동익 가족의 집에 기생하는 과정, 그 속에서 생기는 재미난 에피소드, 우연히 밝혀진 지하실의 진실과 가정부 문광의 정체 등 표면적으로는 절대로 계급,계층이라는 어려운 이야기와 관련 없을 것 같은 하나의 소동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이러한 세 가정의 흥미로운 소동이 우리 사회의 계층 문제라는 큰 담론과 연결되는 지점에서 무수한 상징과 주제들이 숨어있다는 점이 참 인상 깊은 영화였습니다. 즉 각종 비유를 통한 간접 화법으로 영화의 여러 장면들이 우리의 뇌리를 스치게 하는 작품이었죠. 특히 영화의 비극적 엔딩은 우리 현실의 씁쓸함과 퍽 닮아 있습니다.

 

 

 

이처럼 간접 화법을 통해 큰 인상을 남긴 <기생충>과 달리 계층문제라는 비슷한 소재를 다룬 <더 플랫폼>은 주제전달 방식에 있어 인상 깊지 않습니다. 우선 영화가 너무 노골적입니다.

영화의 시작부터 우리는 예측을 할 수 있어요. 수직 감옥과 끝을 알 수 없는 여러 층의 존재, 이는 너무 명백히 우리 사회를 상징하죠.

 

 

 

 

그리고 제한된 시간과 음식은 한정된 재화를 뜻하겠죠. 층이 점점 내려가며 굶주린 아랫층 사람들은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싸우는 것까지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예측이 가능합니다. 예고편만 보더라도 말이죠. <설국열차>,<기생충> 등 각종영화에서 이미 봐왔던 장면이고 우리 사회에서 매번 보아온 뻔한 일들이니까요. 우리의 예상대로 영화가 흘러가는 모습은 결국 영화의 재미를 반감 시킵니다.

 

 

주제 전달이 노골적이라고 해서 꼭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만큼 잘 와 닿는 효과적인 방법이니까요. 하지만 노골적인 전달방식을 활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토리가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큰 단점일 겁니다. 짧은 러닝타임 때문인지 등장인물의 행동 동기에 대한 설명을 명확히 하지 않아요. 그리고 개연성이 부족한 장면도 있습니다.

 

고렝은 여린 사람입니다. 감옥에 책을 가져올 정도로요. 처음에 그는 아랫층 사람들을 못살게 구는 트리마가시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점점 그를 이해하고 그와 같이 행동하죠. 그리고 한 달이 지나 171층에 떨어졌을 때, 그에게 배신을 당하며 겨우 살아남아 이기적인 인간이 됩니다. 감옥의 현실에 적응하죠. 33층에서 만난 이모구리가 과거의 그처럼 연대의식을 주장할 때, 묵묵히 33층의 혜택을 누리며 그녀를 무시했죠.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그녀를 돕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나 6층에 올라갔을 때도 아래층까지 내려가 보자며 과감히 자신에게 주어진 특혜를 포기합니다.

 

과연 무엇이 그를 정의롭게 하는가. 이에 대한 설명이 없어요. 객관적으로 고렝의 상황이라면 그 누구도 밑바닥 층까지 내려가자는 생각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암울한 현실 속에서 주인공의 행동과 선택이 주목되는 이 영화에서 행동 동기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아요. 게다가 고렝이 6층에서 만난 바하랏이라는 캐릭터도 의문점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밧줄을 들고 위로 올라간다니. 각 층에서 2명이 먹기에도 음식이 모자란데 3명이 되길 바라는 윗층 사람들이 있을까요? 그리고 바하랏은 그간 몇 층에 있었기에 밧줄을 들고 위로 올라가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일까요? 영화가 각 층을 경계로 생기는 인간의 이기심을 다룬 영화이기에 바하랏을 올려주었다던 동료들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나도 작위적으로 느껴집니다.

 

 

 

 

 

 

 

영화가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를 떠오르게 하는 부분도 큰 단점일겁니다. <설국열차>에서처럼 꼬리칸에서 한 칸 한 칸 나아가며 열차의 진실을 알게 되는 과정과 같이 <더 플랫폼>도 한 층 한 층 내려가며 감옥의 참상을 알게 되는 과정이 너무나도 닮아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이 처한 현실에 대한 풍자가 드러난다는 점까지 같죠.

 

 

 

 

 

 

 

 

 

 

그리고 미지의 특정 공간에서 탈출을 시도한다는 스토리는 빈센조 나탈리 감독의 1999년 작 <큐브>하고도 닮아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비슷한 소재의 다른 영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골적이라는 세련되지 못한 주제 전달 방식의 채택, 특별할 것 없는 스토리, 개연성, 설득력이 부족한 구성 등 여러 단점이 많습니다. 제가 영화에 공감하지 못했던 이유입니다.

 

 

 

 

 

 

 

 

 

 

#결말해석 -아이는 무엇인가-

 영화의 결말은 최하층인 333층까지 내려간 고렝이 아이를 플랫폼에 태워 0층으로 올려 보내는 열린 결말입니다. 아이의 존재는 상당히 큰 충격을 줍니다. 이모구리의 말에 의하면 16세 이하 아이는 플랫폼에 들어올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있었던 것은 시설의 총책임자가 거짓말을 했다는 의미입니다. 이모구리를 포함한 직원들까지 속인 것이죠. 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선 소수의 절대 권력자를 제외하곤 모두가 그의 밑바닥에 존재한다는 극심한 양극화를 상징할 겁니다.

 

이어서 아이가 있었던 333층의 의미는 무엇인가. 익히 알려졌듯 서양에서는 333이라는 숫자를 천사의 숫자라고 합니다. 반대로 666을 악마의 숫자라고 하죠. 특히 악마의 숫자 66666일 새벽 6시의 저주를 다룬 1977년 영화 <오멘>을 포함 여러 영화에서 자주 등장합니다.

 

333층과 666명의 사람들, 즉 천사와 악마의 공존. 이는 누누히 말씀드렸듯 감옥이 우리의 선택에 따라 천국이 되기도 하고 지옥이 되기도 하는 세상을 상징할 겁니다.

 

그렇다면 영화의 마지막, 아이를 올려보내는 고렝의 행동은 무슨 의미인가. 다들 예측하시듯 시설 총책임자의 거짓말로 인해 요리사들과 시설 직원들도 모르는 아이의 존재를 사람들에게 알림으로서 시설의 부당함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였을 겁니다. 즉 우리 사회의 현실로 치환해보면 사회의 모순점에 대해 고발하는 것이겠죠. 이것 말고 그다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주제전달의 방식, 다른 작품을 떠오르게 하는 구성, 특별할 것 없는 스토리 등 여러 문제점 때문에 크게 와 닿지는 않았던 작품. 결말도 그리 대단하지는 않았던 영화 <더 플랫폼>리뷰였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보셨나요? 댓글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윤공 유튜브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2DzMb6U6GE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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